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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하고 살벌한 영국, 브라이튼에서 집 구하기 현실 1(사이트, 뷰잉 약속 잡기 과정)

유모나리자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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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닷컴으로 구한 임시 숙소는 임시일 뿐이다. 진짜 내가 계속 머물 집이 필요하다. 

 

임시 숙소에서 일주일을 묵기로 했으니, 원래는 그 일주일 동안 집을 알아보고 계약할 생각이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출국 1, 2주 전부터 미친 듯이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유난히 노을이 아름답던 날

 

영국에 있는 집들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들은 다음과 같다.

1) Rightmove 

2) Zoopla

3) SpareRoom

 

Rightmove가 매물이 제일 많다. 그래서 여기만 꼼꼼히 보면 사실 Zoopla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같더라. 거의 중개인들이 두 사이트에 다 올리니까. 하지만 혹시 모르니 Rightmove에서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면 Zoopla도 잘 살필 필요는 있다. SpareRoom은 말 그래도 룸을 스페어하는 사이트인 것 같아서 이용하지는 않았다. 난 나만의 공간이 가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각자의 상황에 맞게 모든 사이트를 현명하게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계속 거창하게 '집'을 구한다고 했지만, 그게 영어의 'house'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경제 상황이 다 달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워홀하러 가는 사람들이 구하는 건 '스튜디오''플랫'이다. 스튜디오는 우리 말로 원룸이고, 플랫은 아파트인데, 아파트가 우리나라처럼 좋은 주거 환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렴하고 약간은 열악한 다세대 주택 정도?

 

그것도 아니면 여러 명이 같이 사는 하숙(하우스 쉐어)의 개념? 집이 있는데, 그 집에 여러 명이 같이 산다. 방 하나를 내가 차지할 수도 있고, 방 하나를 누군가와 공유할 수도 있다. 각자 화장실이 있는 집도 없지는 않던데 보통은 다른 사람들과 화장실을 공유해야 한다. 당연히 주방이며 다른 공간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는 화장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싫었다. 내가 당장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 누가 기다릴 수도 있으니 나도 맘 놓고 화장실에 오래 있을 수도 없고. 급해서 당장 씻고 나가야 하는데 누가 씻고 있으면 어떡할 것이며. 

 

그런 이유로 웬만하면 나만의 스튜디오나 플랫을 구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하우스 쉐어를 하더라도 나만의 화장실이 있는 곳을 원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넘쳐나는 매물을 하나하나 다 보려면 진이 빠지므로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다음을 고려했다. 

1) 빌 포함인가? 세금은?

월세랑 빌(가스비,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을 따로 받는 곳이 있다. 월세가 싸다고 좋아했는데 빌은 별도일 수 있으므로 잘 살펴야 한다. 게다가 세금(council tax)도 있다. 아마 하우스 쉐어는 내가 집 하나를 차지하는 게 아니니까 세금은 신경 안 써도 될 거다. 난 웬만하면 월세에 빌이 포함된 집을 원했다. 어떻게 귀찮게 일일이 빌을 내가 따로 내. 세금은 어쩔 수 없는 거고.

 

2) 바다와 가까운가

브라이튼으로 가는 이유가 바다 때문인데 바다와 가깝지 않은 곳은 의미가 없었다. 바다 전망이면 좋겠다고 혼자 망상에 빠져봤지만 사실 그건 말도 안 되고... 바다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한 집에라도 살고 싶었다.

 

3) 주변 교통, 마트, 편의 시설 등

웬만하면 교통이 좋고 생활 편의 시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 그래야 따로 교통비가 안 들지.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센터에 살아야 한다. 

 

4) 원룸이라도 너무 답답하지 않을 것

하우스 쉐어를 하면 좋은 게, 그래도 내 방 말고 다른 공간들도 이용할 수 있으니 답답한 느낌은 안 들 거다. 하지만 원룸은 다르다. 좁은 공간에서 정말 답답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숨 쉴 공간은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총 12개로 매물을 추렸고, 뷰잉(집 구경하기)을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메시지를 남발해도 되나 싶었다. 12개 뷰잉 약속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싶고.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더라. 왜냐하면... 답장 자체가 잘 안 오니까... 

그렇다. 답장 자체가 안 온다. 

 

'저는 지금 한국에 있지만 3월 28일에 영국에 갑니다. 저는 아직 영국 번호가 없지만 와츠앱 번호라도 남기겠습니다. 뷰잉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

 

라고 12개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단 세 곳에서만 왔다. 

 

1. 첫 번째 집

 

그 중 한 곳에서 와츠앱으로 받은 답장이다. 나는 내가 뷰잉을 하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기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을'도 아니고 '병', '정' 정도의 지위구나. 아직 영국에서 변변한 직업도 없는 외국인인 내가 영국에서 집을 구하려면,

1) guarantor(보증인) 또는

2) 3개월~6개월의 월세 선불이 필요하다. 

 

보증인은 영국인이고 수입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만 가능하다. 영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보증인이 있을 리가 없나. 그럼 남은 선택지는 월세 선불인데... 저 집은 월세가 900파운드였기에 2,700파운드면 낼 수 있었다. 근데 거기에 보증금 1,038파운드까지 내야 한다. 그럼 총 3,738파운드. 한화로 7백 만원이 넘는 돈. 내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럼 남는 돈이 너무 조금이라 썩 내키지 않더라. 결국 '보증인이 있거나 선불이 아니면 집 구하기 어렵다'는 메시지에 내가 아쉬움 가득한 'Okay...'를 남기는 걸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아, 진짜? 이게 현실인 거야? 외국인 노동자인 내 처지가 이런 거구나. 영국 워홀은 열정만 가득해서 맨몸으로 바닥부터 시작할 수는 없구나. 초기 정착 자금이 필요하구나. 적어도 3개월치의 월세와 보증금. 열정만으로 안 되는구나. 돈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2. 두 번째 집

 

OpenRent는 중개 업체다. 근데 여기는 자기들 홈페이지 메시지를 통해서만 집주인과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내가 직접 내 와츠앱 번호를 알려주려고 해도 그러지 않는 게 좋다며 자기들이 멋대로 내 번호를 지우고 집주인에게 전송한다. 게다가 시차 문제도 있지, 저 홈페이지 자체도 온전하지 않지, 그렇게 소통 오류가 있다가 매물이 사라졌더라... 

 

3. 세 번째 집

 

세 번째 집은 중개인이 메일을 보내왔다. 그래서 소통이 좀 더 편했다. 여기도 역시나 나의 처지를 확인하고는 보증인을 요구했다. 당연히 그런 건 없다고 했더니 그럼 6개월 치 월세 선불을 요구했다. 6개월?? 여긴 또 6개월이야? 여긴 월세가 850이었는데 거기에 보증금까지 더하면 한화로 1,1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이걸 내면 진짜로 100만원이나 간당간당 남을까 말까한 수준이라 도저히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 

 

6개월은 너무 많다고 3개월은 어떠냐고 딜을 시도했더니 다행히 먹혔다. 잔고 증명서를 보내고 나는 반드시 일을 구할 것이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을 끊임없이 어필한 끝에 겨우 뷰잉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휴. 사실 약속을 잡은 뒤에도 불안했다. 나보다 먼저 누군가 집을 보고 채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아직 한국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로 영국으로 출국했고 바로 다음날 뷰잉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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