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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하고 살벌한 영국, 브라이튼에서 집 구하기 현실 2(실제 뷰잉, 입주 후기, 초기 정착비, 쇼핑 목록)

유모나리자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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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잉 약속을 잡은 날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오직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으니, 나만 약속 장소에 나가는 거 아닐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몇 분 늦기는 했지만 담당자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월세 850파운드인 내가 보기로 한 집은!! 

옷장, 협탁, 침대, 싱크대가 있다(가스레인지는 없음)!! 풀 퍼니시드(full furnished)!!
식탁도 있다! 이건 식탁 겸 책상으로 요긴하게 쓴다. 모든 생활을 여기서 하는 중.
블라인드 있고, 이중창이고, 라디에이터 있고!
나만의 욕실도 있지!! 수건 걸이에 열이 나게 할 수 있어서 빨래 말리기 좋음

 
중개 사이트에 있던 사진을 그대로 가져왔다. 사진을 봤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나한테 딱 맞는 집 같았으니까. 나한테는 저 정도면 족하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고 넘치는 수준이다. 집을 구할 때 침대, 책상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깔끔하고 현대적인 모습에 싱크대까지 있어? 큼지막한 옷장도 있어? 최악의 열악한 주거 환경까지 상상했기에 이 정도면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요리를 하고 싶으면 공용 주방을 써야 한다. 냉장고, 선반 자리 분배도 확실함.
세탁기도 공용으로. 근데 사용하려면 돈 내야 함....


 
주방은 공용 주방을 써야 한다. 요리를 크게 즐기는 않는 나에게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충분히 큼지막한 주방이라 여러 사람이 몰려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더라(지금까지 2주 정도 살았는데 요리하는 사람도 잘 없고, 있어도 시간이 겹치는 일이 잘 없어서 요리할 때 전혀 불편한 일은 없었음). 다만 냉장고도 밖에 있으니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건 좀 귀찮기는 하다. 
 
그런데 세상에, 대체 왜 세탁기는 유료죠? 2파운드라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못 써 봤다. 동전이 없어서... 대체 요새 누가 동전을 쓴다고. 영국 와서 지폐를 쓴 적이 없는데. 이건 곧 방법을 찾을 예정이다. 그럼 여태 2주 넘게 살았는데 빨래를 한 번도 안 했냐고? ... 다 손빨래로 했다. 놀랍게도 인간은 다 적응하며 살게 마련이다. 그리고 혼자 살면 빨래할 것도 많지 않다. 
 
어쩌다 보니 뷰잉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후기가 되었는데, 뷰잉은 사진 그대로였고 5분도 안 되어서 끝났다. 사진 그대로라 너무 좋았다.
 
사이트에선 스튜디오(원룸)이라고 소개한 집인데, 이게 스튜디오가 맞나? 진짜 스튜디오라면 주방 시설까지 내 방에 있어야 하지 않나? 어쨌든, 그렇다고 하니, 뭐. 불만은 없다. 오히려 좋아. 내 방에서 음식 냄새 안 나도 되고, 좁은 내 방 말고도 공유하는 공간도 있으니까. 혼자 사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적절히 잘 구상해 만든 건물이다.  
 
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했고 홀딩비(계약금)를 보냈다. 이후 여러 서류들을 메일로 받았고 서명했다. 딱 법대로 절차대로 문제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중개소를 만났다.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외국인이라 사기 당하는 거 아닐까 나 등쳐먹으려고 혈안이 된 나쁜 사람들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닌 듯. 
 

 
입주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이런 메일을 받는다. 계약을 했더라도 절대 입주하기 전에는 돈 보내는 거 아니라고 해서 안 보내고 있었다. 오후 2시에 열쇠를 받기로 했고, 열쇠를 받으면 그때 돈을 보내려고 했다. 근데 오후 1시쯤 전화가 와서 너 아직 돈을 안 보냈다고 하길래 그냥 그때 보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주할 테니까 별 문제 없겠지 싶어서. 실은 2시에 열쇠를 줄 중개인을 기다리며 불안했다. 심지어 5분 넘게 늦게 왔다고. '나 사기 당한 거 아닐까? 입주하고 돈 보내라고 했는데, 괜히 미리 보냈나? 안 나타나면 어떡해? 다 사기였던 거 아냐? 내 3천 파운드...'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곧 중개인이 왔고, 열쇠를 받았고, 내 방이 됐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하는 걸로 절차가 끝났다.
 

10초만에 둘러볼 수 있는 작고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내 방ㅎㅎㅎ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 정말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의 뷰잉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브라이튼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런던은 진짜 살벌하다던데. 
 
어? 근데 왜 이불이 없어? 베개는? 아... 그거까지는 없구나.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이런 것도 다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공용 주방이니 식기 같은 것도 공용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다 내가 사야 한다. 왠지 사기 당한 기분이었지만 내가 이 주거 시스템에 무지했을 뿐. 
 
근데 일단 오늘 잠을 자려면 이불은 있어야 하잖아..? 화장실 가려면 휴지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입주한 날 정말 미친 듯이 돌아다녀서 다 샀다. 다행히 번화가라 다 근거리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베개 10파운드
이불 14파운드
시트 세트(침대 시트, 이불 커버, 베개 커버) 10파운드
 
 

씌운 모습. 사랑스러운 작고 아담한 내 침대.

아마존에서 더 싸게 팔긴 하지만 나는 당장 필요했으므로 그나마 저렴한 가게에서 잘 산 것 같다.
 

휴지, 주방 세제, 칼, 오븐용 장갑, 비누, 컵, 수세미...
냄비, 프라이팬, 집게, 오븐용 트레이

머그컵 1.5파운드
철 수세미 0.75파운드
프라이팬 9파운드
냄비 8파운드
오븐용 트레이 3파운드
집게 2파운드
도마 2.49파운드
오븐용 장갑 5.99파운드
주방용 칼 세트 5.99파운드
비누 1파운드
빨래 비누 1파운드
주방 세제 0.6파운드
접시 0.8파운드
휴지 4파운드....
 
침대 시트까지 이 날 소비한 비용이 80.12파운드. 15만원 좀 넘네. 진짜 최소한의 초기 정착비 아닐까? 아, 여기에 월세 선불 3,500파운드까지. 
 
진짜 최소한의 것들로만 샀다. 컵도 딱 하나, 접시도 딱 하나, 냄비도 작은 거 하나, 프라이팬도 작은 거 하나, 집게도 딱 하나...
혼자 삶을 꾸리는 게 처음이라 대체 뭘 사야 할지 감도 안 잡혔는데,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 오븐용 장갑과 트레이는 공용 주방에 오븐이 있어서 샀다.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비누 1파운드, 주방 세제 0.6파운드... 파운드랜드(Poundland)라는 영국의 다이소에서 무조건 제일 싼 것들로만 구매했다. 근데 다이소는 1천 원부터 시작하지만 파운드랜드는 1파운드부터 시작한다. 1파운드는 거의 2천 원... 영국은 우리나라 물가의 2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식 물가는 2배 이상이고. 외식 한 번에 3, 4만원 깨지는 건 우습다. 심지어 저렴한 편...이건 나중에 더 자세히). 
 
이사하고 이거 저거 사느라 정말 바쁜 날이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내가 꾸리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그것도 영국에서! 이제 시작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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